제일고보 재학 중 친일학생을 구타해 옥고를 치르고, 와세다 대학교 시절에는 비밀단체 독서회 사건에 연루되어 도쿄 스카모 형무소에 수감된다. 이때 얻은 폐결핵으로 학교를 중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열정적으로 문학에 매달린다.
야학을 열고 항일 사상을 강의했으며, 소인극 등을 상연해 농민과 학생들의 화합을 유도하기도 했다.
권태응은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동시로 써야 한다는 마음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연과 아이들을 노래한 동요와 동시를 썼다.
1948년에 동요집[감자꽃]을 펴낸 후 1951년 34세의 젊은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경기고 시절 북악산에 올라 총독부를 내려다보며 큰돌을 들고 쳐부수려하는 이 사진이 발각되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간호사 박희진과 만나 결혼
권태응 작품활동
권태응은 아동 문학가였으나 주로 토속적인 것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그가 작품을 쓴 시기는 요양원에서 퇴원 후 낙향을 하고부터였다. 44년부터 51년 타계할 때까지 불과 6, 7년 동안 혼신을 다하듯 작품을 쏟아냈다.
어린이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고추밭], [율무], [옹달샘] 등의 정감 있는 소재를 활용해서 동시를 발표했다.
이에 앞서 해방 전후에는 농민들의 삶에 담긴 애환과 희망, 일본 유학생들의 삶의 모습과 올바른 지식인의 자세를 그린 단편소설 [새살림], [별리], [양반머슴]등을 창작했으며 47년[소학생]에 [어린 고기들]을 발표한 뒤 50년까지 거의 매호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동요 시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대표작으로 [귀뚜라미와 나], [감자꽃], [또랑물], [오리] 등이 있으며 1948년 글벗집에서 동시집 [감자꽃]을 출간했다.
2011년 소설 [지열]과 희곡 [동지들], 수필 [파릿채], [산울림], 만문(漫文) [좌우론] 등 5편의 미발표 유작이 발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