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생애
정지용은 한국 최초의 모더니스트로 불리며 주옥같은 시와 평론 등으로 한국 현대시의 바탕을 마련한 시인이다.
옥천 출생으로 일본 교토의 도시샤대학 영문과 유학 후 귀국해 휘문고보의 교사로 부임할 때까지 끊임없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정경을 아름다운 시구로 표현하였다.
1926년 [카페프란스]를 시작으로 대표작 [향수], [고향]등을 발표하였고, 박용철, 김영랑 등과 [시문학]을 창간, 순수시 운동의 물길을 틔웠다.
선명한 심상과 절제된 시어로 언어의 연금술사로 불린다. 광복 이후 어지러운 정세 속에서 정치적 혼란을 겪었고, 6.25 전쟁 이후 행방불명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확인되지 않고 있다.
- 산문
- 백록담
정지용 작품활동
정지용은 일본 강점기의 문인탄압과 회유에도 꺾이지 않은 민족 시인이었다.
또한 1920년대 대다수의 시인이 감정의 분출에 의한 본능적인 시를 쓰던 분위기와 달리 다양한 감각적 경험을 선명한 심상과 절제된 언어로 표현, 언어에 대한 자각을 각별하게 드러낸 시인으로 한국 현대시의 신경지를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의 첫 시집 [정지용 시집](1935)에 수록된 [향수] 등은 모국어의 눈부신 개척과 빼앗긴 조국을 ‘고향’의 이미지로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로 각인시키고 일깨웠다.
그의 문학 세계는 대략 세 가지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1926~1933년으로, 이때의 정지용은 이미지를 중시하면서도 향토적 정서를 보인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생산했다.
26년[학조] 6월호에 실린 시 [카페 프란스], [마음의 일기에서], [바다], [조선지광.1927.2]와 [향수], [조선지광.1927.3] 등이 첫 번째 시기의 예가 되는 시들이다.
두 번째 시기는 [가톨릭 청년]에 관여하던 1933~1935년에 보여준 종교적인 시이다. 이 시기에는 [나무], [가톨릭 청년.1934.3]같은 시처럼 절대자에게 관심을 갖고 시대적 상황에 무력한 자신의 정신적 허기와 갈증을 신앙을 통해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시기는 1941년까지 발표한 동양적 전통과 정신에 바탕을 둔 산수시이다. 이 시기에는 동양적 정신과 산수의 풍경을 그리는 여행을 떠남으로써, 시적 소재가 [바다], [시원.1935.12] [옥류동], [조광.1937.11], [비로봉], [청색지.1938.8], [장수산], [문장.1939.3], [백록담], [문장.1939.4]으로 바뀐다.
이 시기의 그는 자연을 대상으로 삼아 시어의 조탁과 섬세하고 선명한 이미지로 독특한 시 세계를 표현했다.
100여 편이 넘는 시 외에도 소설 [三人(삼인)], [서광.1919.11]과 평론 [조선시의 반성], [문장.1948.10], [문학으로 사는 길], [세계일보.1949.1.5] 등이 있으며, 시집으로 [정지용시집] (1935), [백록담] (1941), [지용시선] (1946)이 있으며 이론서로는 [문학독본] (1948), [산문] (1949) 등이 있다.
대표작품감상
작품명 | 작품보기 | 작품명 | 작품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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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鄕愁) | 고향 | 자세히보기 | |
호수 1 | 자세히보기 |
정지용 연보
1902 | 충북 옥천군 하계리에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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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 | 옥천공립보통학교 입학 |
1918 | 휘문고등보통학교 입학 |
1924 | 휘문고보의 교비생으로 교토 도시샤대학 입학 |
1926 | [학조]에 시[카페프란스]발표 |
1927 | [바다], [향수], [조선지광]에 발표 |
1929 | 귀국 후 휘문고보 영어과 교사 |
1930 | [시문학]동인활동. 다수의 작품 발표 |
1933 | ‘구인회’ 활동. [시와 소설] 간행 |
1935 | 첫 시집 [정지용시집] 출간 |
1938 | [꾀꼬리와 국화], [비로봉]등 다수의 작품 발표 |
1939 | [문장] 추천위원. 청록파 시인 등단시킴 |
1941 | 제2시집 [백록담] 출간 |
1945 |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 재직 |
1946 | 조선문학가 동맹 중앙집행위원 [정지용시집] 발간 |
1949 | [문학독본], [산문] 발간 |
1950 | 6 · 25전쟁 이후 북한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확인되지 않음 |
1988 | 정지용 시 해금. 정지용 문학 회복 운동 시작 |
1996 | 옥천 정지용 생가 복원 |
2005 | 옥천 정지용 문학관 개관 |
정지용 추모사업
1988 | 정지용문학 해금과 함께 4월 지용회 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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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 5월15일 1회 ‘지용제’를 서울에서 개최. (지용회) |
1988 | [정지용선집] (민음사)발간 |
1989 | 1회 지용문학상 시상 이후 매년 시행 |
1989 | 2회 지용제를 옥천에서 개최한 이후 매년 개최 (옥천문화원, 지용회) |
1995 | 1회 지용신인문학상 제정이후 매년 시상 (동양일보) |
1996 | 생가복원 (옥천읍 하계리) |
1997 | 1회 연변지용문학제 개최이후 매년 개최 (옥천문화원) |
2000 | 지용청소년문학상 시상이후 매년 시행 |
2002 | 정지용 탄신 100주년 서울지용제 및 지용문학심포지엄 개최 |
2002 | 1회 전국지용백일장개최이후 매년 시행 |
2005 | 정지용문학관 개관 (옥천읍 하계리) |
2008 | 문화의 달 기념 충북 근 · 현대 작고예술인 특별전(청주 예술의 전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