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희는 민족주의적 극작가, 사실적인 시인, 현실비판의식이 높은 프로소설가라는 뚜렷한 업적을 남긴 선구자로 희곡, 시, 소설 어느 분야에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문학가이다.
1923년 우리나라 최초 창작 희곡집인[김영일의 사(死)]를 펴냈고, 1924년 우리나라 최초의 미발표 창작시집 [봄 잔디밭 위에]를 펴냈으며, 1927년에는 기념비적인 소설[낙동강]을 발표했다.
일제의 탄압을 피해 러시아로 망명한 후에도 산문시 [짓밟힌 고려] 등 항일 작품을 계속 발표, 러시아에 한글문학의 씨앗을 뿌렸으며 1938년 스탈린의 소수민족 탄압정책에 의해 총살당한 뒤, 1956년 무혐의로 복권되었다.
우즈베키스탄 수도인 타슈켄트에 ‘조명희 거리’가 만들어졌다.
1924년 '봄 잔듸밧 위에'(최초의 창작시)
조명희 - 김영일의 사
조명희 작품활동
한국 신문학사상 가파른 일제강점하의 민족수난기를 온몸으로 관통해 오면서 뚜렷한 문학적 족적을 남긴 포석 조명희는 희곡, 시, 소설 어느 분야에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문학가이다.
그가 근대문학초창기 한국문단에서 활동한 기간은 8년 정도로 짧은 기간이지만 다양한 활동으로 민족주의적 극작가, 사실적인 시인, 현실비판의식이 높은 프로소설가라는 선구적 업적을 뚜렷이 남겼다.
1920년 극예술협회에 가담하면서 희곡 [김영일의 사(死)]를 발표했다. 이 희곡은 그의 처녀작으로 ‘동우회’ 극단에 의해 1921년 전국순회공연을 올려 호평을 받았다.
「김영일의 사(死)」는 민족주의 신극운동을 개척했다는데서 희곡사적 의미를 가진다.
23년에는 우리나라 최초 창작 희곡집[김영일의 사(死)]를 펴냈고, 24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미발표 창작시집 [봄 잔디밭위에]를 펴냈다. 27년에는 그의 대표작이며 기념비적인 소설 [낙동강]을[조선지광]에 발표했다.
[낙동강]은 자연발생적인 수준에 머물던 신경향파 문학을 목적의식적인 프로 문학으로 발전시킨 작품으로 평가된다.
28년 일제의 탄압을 피해 러시아로 망명한 후에는 산문시 [짓밟힌 고려]를 비롯해 항일투사들의 활동을 그린 소설 [만주 빨치산] 등을 쓰는 등 KGB에 연행될 때까지 2편의 장편소설과 7편의 산문시 수필 평론 등을 썼다.
이러한 작품들은 당시 교포문단에 활력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땅에 뿌린 한국 문학의 씨앗이 되었다.
최근까지 조사 정리된 그의 작품은 시 64편(일반시 60편 산문시 4편), 소설 12편, 희곡 2편, 평론 9편, 수필 18편 아동문학 9편(동요 8편, 동화극 1편) 등 114편으로 집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