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흡 생애
이흡은 카프 해체기에 등단, 해방공간에서 잊혀진 시인들 중 한명으로 그 흔적을 찾기 어려운 시인이다.
충주시 신니면 신의실에서 출생한 이흡은 1915년 용원보통학교에 입학, 글벗 이무영을 만났고, 후에 함께 문학공부를 하였다.
이흡은 1933년 신산한 일제치하의 삶을 풍자한 시 [피에로의 노래]로 등단했으며 주로 동아일보, 조선일보 지면을 통해 작품을 발표했다. 또한 고향의 후배시인 정호승, 지봉문을 도와 문예지[조선문학]을 통해서도 작품활동을 하였다.
주로 동아일보, 조선일보 지면을 통해 작품을 발표했으며, 고향의 후배시인 정호승, 지봉문을 도와 문예지 '조선문학'을 통해서도 작품활동을 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목적의식과 계급의식이 부족하다는 평가와 경향시단에서 보기 힘든 풍자미와 낭만적인 의식이 담겼다는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이흡은 불안했던 한국 근현대역사속에서 미완의 비극으로 사라진, 양심적 시인으로 기록되고 있다.
- 영춘곡
이흡 작품활동
데뷔작 「피에로의 노래」(전선 1933.1)를 비롯하여 「도시의 방랑자」 등 발표된 시의 성향으로 이흡의 시는 카프파와 ‘동반자적 경향’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그의 시에는 경향시단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풍자미와 낭만적인 의식이 드러난다. 그의 단편적인 활동만으로 이흡을 프로시인으로 규정하거나, 또는 일부에서 보는 관점만으로 농민시인으로 한정하는 것은 이흡을 올바르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시 중에서 [산비알], [고향의 노래], [고향]의 경우는 언어를 절제하는 서정성 짙은 시이며, [가을의 울분], [오늘과 내일], [올배미우는 밤], [무숙자의 노래] 등은 투철한 항일시로서 시의 품격이 매우 높으며, 광복 후 발표된 [뒤 따르리라]와 [별을 안고] 등은 민족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념의 문제로 고뇌하는 시인의 모습이 잘 나타난 작품이다.
또한 당대의 사회분위기를 그린 시 [불안]은 일제말기 지식인들의 불안과 좌절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했으며, [미완성의 비극]은 소시민적 지식인에 대한 자기비판의 시이다.
마지막으로 36년 발표작인 [무제(無題)]는 그가 양심적 지식인으로 일제 말기를 산 시인이라는 증거가 잘 드러난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친일로 돌아선 시기에도 이흡은‘흐릿하던 별빛도 새 빛이 찬란하오’라며 광복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며 현실과의 타협을 허락하지 않는다.
정종진 교수(청주대)는 이흡의 시 43편과 수필, 평론 등의 산문 13편을 대상으로 [이흡의 시 연구]를 출간했다.
대표작품감상
작품명 | 작품보기 | 작품명 | 작품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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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노래 | 신의실 | 자세히보기 | |
마냥 서있는 밤이 있다 | 자세히보기 |
이흡 연보
1908 | 충주시 신니면 용원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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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 | 용원보통학교 입학 |
1927 | 서울 보성중학교 중퇴 |
1932 | 조선문필가협회 가입 |
1933 | 조벽암, 이무영 등과 [문학타임즈] 창간 군포에 거주. [피에로의 노래], [전선] 발표 |
1935 | 정호승과[조선문학]에서 일함 |
1936 | [고향의 노래], [신동아], [무제], [휘파람불며], 수필 [신의실아! 그리워] 발표 |
1937 | [신의실], [조선문학](이 작품은 [고향의 노래]와 동일작), 수필 [삼보정을 소요하며] 발표 |
1939 | 이무영이 동아일보를 사직하자, 이웃으로 이사 오게 해 창작활동을 하도록 도움.(경기도 시흥군 의왕면) |
1945 | [팔월 보름날], [해방기념시집] 발표 |
1949 | [마냥 서 있는 밤이 있다], [조선문학전집] 발표 |
1950 |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행방불명됨 |
2008 | 탄생100주년 기념 세미나 개최 |
이흡 추모사업
2008 | 탄생 100주년 작가기념 세미나 [이흡의 문학세계 - 한국현대문학사에 중도인물인가] - 정종진 교수(청주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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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 문화의 달 기념 충북 근,현대 작고예술인 특별전(청주 예술의 전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