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벽암은 광복기에 시인, 소설가, 평론가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문인이다. 어린 시절 삼촌이었던 조명희의 영향을 받고 자랐으며, 정지용, 이무영, 이흡 등과 교류하며 문학적 역량을 키웠다.
1931년 소설 [건식의 길], 시 [수향]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930년대 중반부터 카프, 구인회 등의 동인으로 활동하며, 일제강점기 후반의 황폐화된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진실하게 담아냈다.
광복 이후 설립한[건설출판사]는 카프계와 민족진영 문인들의 창작집의 산실로[정지용 시집], [낙동강](조명희) 등 많은 문학, 예술종합지 등을 발행하며 당대의 출판문화를 이끌었다.
1949년 월북했으며, 북한에서 시집 [벽암시선](1957)을 간행했다. 1985년 오랜 병환 끝에 사망했다는 짧은 보도가 신문에 실렸다.
조벽암 시전집
조벽암 향수
조벽암 벽암시선
조벽암 작품활동
조벽암의 작품 활동은 1930년대 초에 시작되었는데 시와 소설을 거의 동시에 병행하면서 발표하였다.
시 작품으로 [새 아침], [신동아](1933), [만추사경], [동아일보](1933), [새 설계도(設計圖)], [동아일보](1934), [봄], [신동아](1934) 등을 발표하였고, 시집으로[향수](이문당서점, 1938)와[지열 地熱>](이문각, 1948)을 간행하였다.
그의 시는 지식인의 비참한 현실과, 지식인이 현실에서 느끼는 우수와 권태와 비통과 증오의 감상을 서사적, 설명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편 그의 소설은 크게 두 가지 경향으로 나뉘는데 [건식(健植)의 길], [조선일보] (1931), [구인몽 喜熟濫], [비판](1932.11.∼1933.1), [농군], [비판](1933), [처녀촌], [조선문학](1933), [파종], [신동아](1935), [취직과 양(羊)], [조광](1937) 등은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인물들의 사회적 투쟁을 다루거나, 동물에 빗대어 현실을 간접적으로 비판한다.
이에 비해 [결혼 전후], [신가정](1934), [노승 老僧] [조선문학](1936), [파행기 跛行記], [신동아](1936) 등에서는 당대 현실의 문제를 진지하게 적용하지만, 정치적 이념을 내세우기보다는 도덕 문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당시 프로문학의 관념성과 도식성을 개인의 양심과 문학적 기법으로 일정하게 넘어서고 있다. 역서에 [고리키(Gorki, M.)의 문학론](1947)이 있다.
월북 후에는 [싸우는 제주도], [청년생활](1950), [떼비둘기 날을 때까지], [조선여성](1950), [동궁 앞에서], [조쏘문화](8호) 등의 시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