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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홍명희-임꺽정
작성자
통합관리자
작성일
2021.12.13
조회수
126
첨부파일목록

임꺽정

 이 해는 팔도(八道)가 거진 다 흉년이 들어서 삼남(三南)의 벼농사도 말이 아니고 양서(兩西)의 조농사도 마련이 없었다. 삼남에는 오월 한 달을 내처 가물어서 고래실 땅에도 호밋모를 낸 데가 많았고, 엇답·건답 들은 거지반 메밀 대파(代播)를 하였었다. 가을에 와서 지주(地主) 작인(作人) 사이에 도조 재감(賭租災減)으로 말썽이 많이 생겨서 된내기 온 뒤까지 벼를 세워놓고 베지 않은 땅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삼남은 곡향(穀鄕)이라 수한병식(水旱並食)하는 좋은 땅도 많거니와 잘되어서 양서같이 참혹하진 아니하였다. 양서는 첫가뭄이 들고 늦물이 가고 게다가 풍재(風災)에 박재(雹災)까지 겹친 데가 있어서 두태(豆太)도 많이 줄었지만, 주장세우는 서속이 소출이 가량없이 줄었었다. 밤에 바심하는 머슴들이 밤참 투정할 경도 없었고 북섬이를 숭치는 여편네들이 웃고 지껄일 흥도 없었었다. 평년에 백 석하던 사람이 이삼십 석만 하여도 잘한 양으로들 말하였다.

 청석골서는 매삭(每朔) 도중 공용(公用)으로 쓰는 석수(石數)가 엄청나게 많았다. 대장과 두령들은 녹(祿)을 먹고 두목과 졸개들은 요(料)를 태우는데 대장은 백미(白米)가 일 석(一石)이요, 황두(黃豆)가 십두(十斗)요, 두령 십인(十人)은 매인 백미가 십 두요, 황두가 오 두요, 두목 이십여 명은 매명 요가 쌀 닷 말, 서속 닷 말에 마소먹이 콩이 두어 섬씩 나가서 육십 석 곡식을 가져야 한 달을 부지할 수 있었다. 청석골서 평양 봉물을 뺏은 뒤로 관서(關西)·해서(海西) 감영과 각읍(各邑)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진상과 인정을 대개 중간에서 가로채고 또 근기(近畿)와 해서의 여러 골로 돌아다니며 크면 읍을 치고 작으면 촌을 떨어서 모은 재산이 적지 아니 끼쳤었지만, 봄 이후로 벌어들이진 않고 쓰기만 한데다가 반이 부비, 역사 부비 같은 모개용을 누차 써서 한온이가 재산 반을 들여놓지 않았다면 다음 달 녹과 요도 자라지 못할 뻔 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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